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대국의 최소 (문단 편집) === 문화력 측면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5세기 중반 한글 활자.jpg|width=100%]]}}}|| || {{{-1 15세기 중반 한글 금속활자}}}[* 2021년 서울 [[종로]]에서 출토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한글 금속활자 중에서는 가장 이른 [[세종(조선)|세종]]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만큼 한국의 언어, 문자 연구에 있어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평가된다.] ||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에 비해 소프트 파워에서 열세에 있지만 [[인도]], [[브라질]]에 비해서는 우세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이 국력, 경제력 대비 소프트 파워가 떨어지는 요인은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와 비교해서 굉장히 이질적인 독자적 언어체계를 가졌다는 점이 있다. [[한국어]]는 언어학적으로 전세계의 공용어들과 유사성을 찾기 힘든 [[고립어(비교언어학)|고립어]]에 해당한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을 드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문장의 구조나 조사의 사용, 유사해 보이는 일부 음운과 단어 등을 생각하면 비슷한 언어가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초어휘'''와의 연관성이 매우 적고, 다른 고유어의 어휘 역시 설령 비슷해 보이더라도 그 용례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에 이 유사성은 언어학의 연구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다. 단어의 발음이 비슷한 것은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서 한자어가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 뿐이다. [[언어동조대]]는 맞지만 같은 계통의 언어인지는 단언할 수 없는 셈.] [[한국어]]는 세계적 주류인 [[영어]]와는 문법이 크게 다르며 이로 인해 한국어 화자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기가 힘들고, 외국인들 역시 한국어를 배우기 힘들다. [[한민족]]의 문자인 [[한글]]도 한 나라에서 통용되는 문자로서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신생문자에 속한다. 또한 한국은 과거 [[조선]] 역사 500여 년 동안 중국의 영향권 내에서 안주하고 있었고 외국의 연구자들이 한국에 출입국하거나 문헌을 반출, 반입하는 등의 교류활동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생산자 부족으로 인해 언어와 문자를 통한 [[소프트 파워]] 확대가 어려웠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이 오랜기간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이 있다.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16세기부터 서양과의 활발한 무역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서양에 전파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서양에서는 중국 문화 [[시누아즈리]], 일본 문화 [[자포네스크]]가 유행했었다. 그에 반해 조선은 해상 활동이 매우 약했으며 [[고려]]와는 달리 중국과 일본 외에 실질적인 교역이 없었다.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조선은 미지의 지역일 뿐이었다. 그나마 [[박연(조선귀화인)|박연]]이나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외에는 알려진 적이 없었다. [[제국주의]]가 종식되고 연합군에 의해 국제질서가 재편된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는 [[한반도]]가 [[남북분단|남북으로 분단되어]] 대륙과 이어지는 통로가 [[북한]]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육로를 통한 국외와의 교류도 전면 차단되었으며 한국은 [[반도]]국가 특유의 이점을 상실하여 [[섬나라]]와 다름없는 폐쇄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에도 한국어로 된 문서나 정보는 북한이 여전히 [[쇄국]] 정책을 고수하는 만큼 한국 혼자서 생산할 수밖에 없고, 한국어 자체의 파급력이 높아도 정보 확산과 누적 속도는 국제적 언어에 비해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콘텐츠는 세계화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번역과 자막을 만들어줄 전문인력은 모자라고 그 품질도 콘텐츠의 품질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https://news.g-enews.com/view.php?ud=20211119131024726586fbbc3c26_1&md=20211119140659_R|#]].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ttachment/61878569.jpg|width=100%]]}}} || || {{{-1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만화 탄압(1972년)}}} || [[대한민국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오랜기간 한국을 통치했던 군사정권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외교류를 통제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인은 해외로 출국하기 힘들었고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는 것 역시 힘들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군사정권을 몰아내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체제를 수립하였고,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이 국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해외 출국이 자유화된 시기도 민주화와 서울 올림픽 이후인 1989년이었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이탈리아 밀라노 사진 001.jpg|width=100%]]}}} || || {{{-1 [[밀라노]]}}} || 이탈리아의 경우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소프트파워 강국이다. 고대 로마 제국 시기 이탈리아, 특히 [[로마]]는 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으며, 고대 이탈리아어인 [[라틴어]]는 유럽의 학문 언어이자 종교 언어로 널리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중세에도 로마의 [[교황령]]이 [[천주교]]의 총본산으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밀라노]], [[제노바]], [[베네치아]] 등 여러 도시국가들이 지중해에서 무역과 부로 그 명성을 떨쳤다. 깊은 역사에 걸맞게 그간 쌓아올린 유산은 아직도 이탈리아에 많이 남아있다. 또한 종교적으로 천주교의 영적 지도자 [[교황]]이 있는 [[바티칸|바티칸 시국]]이 로마에 있어서 종교적인 영향력도 강하다.[* 바티칸 자체는 독립국이긴 하지만, 서로간에 상부상조, 공생하며 영향도 받는다.] 문화적 측면으로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를 배출한 미술의 나라라고 불리는 데다,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비발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윌리엄 텔 서곡]]으로 유명한 [[로시니]] 등 최고의 음악가들도 배출한 국가이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계 이름 ''' '도레미파솔라시' '''와 [[셈여림]]의 표현인 '피아니시모 - 피아노 - 메조피아노 - 메조포르테 - 포르테 - 포르테시모',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악기인 [[피아노]]의 원래 이름인 '피아노 포르테'가 전부 [[이탈리아어]]다. 그 외에도 음악 관련 용어들(아다지오, 안단테, 모데라토, 프레스토, 라르고, 스타카토, 템포, 솔로, 칸타빌레, 소프라노, 테너 등)이 대부분 이탈리아어이며 [[오페라]]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음악극이다. 따라서 음악이나 악기를 공부, 혹은 전공하는 학생은 이탈리아어 용어를 숙지해야 할 정도로 이탈리아가 세계 음악에 미치는 문화적인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되었고, 국제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으로 유명하다.] 역시 이탈리아에서 열린다. 이 덕분에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나라가 되었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종묘제례 이미지 001.jpg|width=100%]]}}} || || {{{-1 [[종묘제례]]}}} || 대한민국의 경우도 깊은 역사와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원나라]]의 고려 침략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끝없는 외세의 침략 또는 전쟁에 시달리며 귀중한 유적, 유물의 소실을 거듭한 탓에 오늘날 현존하는 유적지와 문화재는 실제 역사의 깊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내전으로 전 국토가 파괴된 한국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외부적인 요인이나 실책으로 문화적 타격을 입은 사례는 대한민국 이외에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문화대혁명]]으로 문화유산의 손실을 겪은 [[중국]]이 꼽힌다.][*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주요 도시가 쓸려나간 [[독일]]의 경우도 실제 남아있는 유적지는 많지 않다. [[일본]]의 경우도 근대의 폐성령과 세계 대전 중 행해진 미국의 공습 등으로 상당한 문화재 파괴를 겪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유적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현대식 공법으로 복원한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베트남]] 역시 [[베트남 전쟁]]으로 후에성 등 많은 유산의 손실을 입었다.] [[황룡사 9층 목탑]] 등으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의 목조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었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고대의 건축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물은 고려시대의 건축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통 건축물은 [[해인사 장경판전]]과 [[법주사]]로 대표되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산사]], [[불국사]], 고궁인 [[경복궁]], [[창덕궁]], [[종묘]], [[한국의 서원|서원]], [[하회마을]],[[양동마을]], [[수원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이 있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6세기 평양.jpg|width=100%]]}}} || || {{{-1 16세기 조선의 평양부}}}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인민대학습당 사진 0002.jpg|width=100%]]}}} || || {{{-1 북한 평양시}}} || 한반도 [[북한|이북지역]]도 문화재 소실 문제에 있어 예외가 아니다. 광복 직후에 벌어진 [[6.25 전쟁]]에서 한반도에 투하된 폭탄의 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투하됐던 폭탄의 양을 초과했으며 이 시기 행해진 폭격으로 한국의 역사 깊은 대도시로 유명했던 [[평양부]]는 잿더미만 남아 과거부터 이어오던 문화적 명성을 잃게 되었다. 휴전 이후 북한은 폐허가 된 평양을 [[기중기]] 등의 현대식 공법을 동원하여 완벽한 계획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전통문화보다는 사회주의 색채를 강조하였기에 복원된 평양시의 모습은 과거의 평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고 사실상 평양이라는 이름 외에는 연결점이 없는 별개의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평양의 변천사는 북한 지역도 한국의 영토로 간주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상당히 안타까운 문화적 손실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개성시|개성]] 역시 6.25 전쟁의 화마에선 비껴갔지만 전근대 시절 숱한 전란으로 많은 문물이 파괴되었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고사관수도.jpg|width=100%]]}}} || || {{{-1 조선전기 회화 - 고사관수도 (강희안)}}}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신윤복 단오풍정.jpg|width=100%]]}}} || || {{{-1 조선후기 회화 - 단오풍정 (신윤복)}}} || 음악, 예술 분야의 경우, 과거부터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올린 이탈리아와 비교하여 한국의 전통음악과 미술이 세계적 기준에서는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음악과 그림에 관련한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존재하였고 특히 조선시대 전기의 화풍은 당대 일본의 전통화풍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화적 가치가 존재한다. 서구권에서는 [[우키요에]]라는 일본식 화풍이 동양화로서 독보적인 인지도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나머지 동방 국가의 전통그림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현실이지만, 일본이 그러했듯 후발주자의 전통 화풍도 적극적인 홍보와 교류를 통하여 인지도 있는 [[동양화]]의 한 축으로 도약할 여지는 충분하다. 한국은 과거에 중국, 베트남과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3대 국가였지만 당시 중국 도자기의 인지도가 높았기에 상대적으로 한국 도자기의 경우 [[고려청자]]와 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배치도.jpg|width=100%]]}}} || || {{{-1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가관 배치도}}} || 대한민국은 1895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에 정식으로 국가관을 두기도 하였다. 아시아 국가로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자국의 전시관을 설립한 나라는 동아시아의 대한민국과 일본, 서아시아의 [[이스라엘]] 3개국 뿐이며,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이 규모에 비하여 꽤나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20 문화적 영향력.jpg|width=100%]]}}} || || {{{-1 Diverse travel에서 집계한 문화적 영향력(2020)}}}[*출처 [[https://www.diverse-travel.com|#]]] || 2020년대 이후 Diverse travel에서 집계한 세계 문화적 영향력 순위에서는 대한민국의 순위가 10위권으로 집계가 되기도 했다. 과거 2019년에 Diverse travel에서 집계한 문화적 영향력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20위를 기록했으나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신규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에 힘입어서 단번에 10위권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보였다. 해당 자료는 대중문화 이외에도 패션, 예술, 관광 등 종합적인 문화력을 고려한 순위이며 현대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을 제치고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세계의 표준이 되는 자료는 아니기에 해외에서 인지하는 문화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참고 자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케이팝 페스티벌 관련 이미지.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지스타 2017 배그 부스.jpg|width=100%]]}}} || || '''K-POP 페스티벌''' || '''지스타 (G-STAR)''' || 대한민국이 강세를 보이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는 전통 문화보다 '''현대''' 문화 쪽이다. 한국의 경우 '''[[한류]]'''로 상징되는 [[K-POP]]과 [[한국 영화]], [[온라인 게임]], [[웹툰]] 등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강세를 보인다. [[방탄소년단]], [[BLACKPINK]], 등으로 대표되는 [[K-POP]]과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는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이며, 웹툰 산업도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를 필두로 하여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한류]] 문서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한류의 지속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가지는 의견인 "방송과 [[연예인]]에 치중된 한류는 불안정하고 한정되어있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와는 정반대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글로벌 한류 트렌드> 보고서에 의하면 오히려 그들을 통하여 패션, 화장품, 음식, 관광, 무술, 산업, 영화, 심지어 도서같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것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쏠리게 되며 한류라는 개념이 더욱 넓어지고, 굳건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한류의 시대별 발전상에 대해서는 [[한류]] 문서나 [[한국 드라마]] 문서 등 각 분야 문서들의 관련 문단을 참조.]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계가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계화의 흐름에 따르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 진화한 결과이다. 35년에 걸친 식민지배 및 분단과 내전, 빈곤의 역사를 겪으면서 전통 문화에 큰 타격을 받고, 이후 약 30여년간의 군사 지배 아래에서 다시 한번 문화를 탄압받았던 어려운 상황에서도 1987년 민주화 이래 단기간에 세계 소프트파워 20위권(아시아 2위) 안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사례는 이례적인 것이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서울 1988 개막사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평창 2018 오륜드론.jpg|width=100%]]}}} || || '''1988 서울 올림픽''' || '''2018 평창 올림픽'''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로마 1960 사진 00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토리노 2006 개막사진.jpg|width=100%]]}}} || || '''1960 로마 올림픽''' || '''2006 토리노 올림픽''' || 스포츠 분야는 단순 비교가 어려우나 대한민국과 이탈리아는 양국이 모두, 하계 및 동계 올림픽에서 다량의 메달을 획득하여 지속적으로 10~15위권 진입에 성공하는 세계 상위권의 스포츠 강국이다.[* 올림픽 메달 집계 기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금메달을 우선으로 여기는 기준과, 전체 메달 개수로 순위를 나누는 기준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금메달 우선으로 집계를 하며, 그 외에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도 금메달을 우선으로 집계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 따라서 메달 순위의 변동이 있지만 대한민국이나 이탈리아의 경우 금메달을 많이 획득하면서도 전체적인 메달 획득률도 높기에 어느쪽을 기준으로 해도 상위권으로 집계가 되는 편이다.] 이러한 스포츠 진흥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자국의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등재한 올림픽 종목 종주국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이외에 소프트 파워 강국들도 자국의 종목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의 [[배구]], 영국의 [[골프]]와 [[테니스]], 독일의 [[핸드볼]], 일본의 [[유도]], 프랑스의 [[펜싱]], 스웨덴의 [[리듬체조]],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등이 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2002 월드컵 기록사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990 월드컵 기록사진.jpg|width=100%]]}}} || || '''2002 한일 월드컵''' || '''1990 이탈리아 월드컵''' ||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FIFA 월드컵]]에서도 대한민국과 이탈리아는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탈리아는 FIFA 월드컵에서 '''네 차례 우승'''을 차지한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며 1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단, 해당 기록은 이탈리아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14회를 마지막으로 끊기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월드컵 우승 기록은 없으나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유일의 4강 진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축구사에서 손꼽힐 만한 명가이고 대한민국 역시 아시아의 강호를 넘어 세계 축구 역사에서도 상당한 발자취를 남긴 국가이다. 세계인의 시각에서도 두 나라는 FIFA 월드컵 본선 무대에 당연히 진출하는 국가로 인지된다. 종합하자면 대한민국은 문화유산의 볼륨이 이탈리아보다 떨어지고, 전통 문화 면에서도 비교적 인지도가 적은지라 홍보에 힘을 써야 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현대 문화에 있어서는 국력의 발전과 함께 크게 성장하여서 세계흐름에 발맞춰 잘 다듬어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단, 한국의 문화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21세기에 들어서이기에 기존부터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쳐온 이탈리아의 문화를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